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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그레이엄이 코리아 밸류업 지수를 평가한다면? [송태헌의 스마트펀드]

한경뉴스 202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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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결국 ROE 높이는 작업

"벤자민 그레이엄은 코리아 밸류업 종목 고PBR 지적할 것"

"필립 피셔는 성장성에 의문 표할 것"






시장의 큰 관심을 받았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프로젝트 첫 단계가 마무리됐습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와 이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상장됐습니다. 큰 기대와는 달리 지수 발표 및 ETF 상장 이후에도 시장에서 반향은 크지 않습니다. 아직 40여 개 회사만이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했고, 계획 이행 여부 등 진정성은 추후 검증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수가 발표되면서 지수 포함 종목의 적정성에 대한 시장 참여자 간 견해가 엇갈리면서 밸류업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됐습니다. 밸류업은 도대체 무엇인지 두 명의 전설적 가치투자 대가들의 투자철학에 비춰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밸류업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밸류업이란 용어의 정의부터 내릴 필요가 있습니다. 밸류업이라고 하면 문자 그대로 가치를 증대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가치는 어떤 가치고 그 가치를 어떻게 증대시킬 수 있느냐가 먼저 규정돼야 합니다. 먼저 밸류업이 지칭하는 가치는 '주주가치'입니다.

그러면 주주가치는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먼저 가장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시장가치, 즉 주가입니다. 상장기업의 경우 매일 시장에서 관찰할 수 있는 지표입니다. 두 번째로는 기업의 재무제표에 나타나는 장부가치가 있습니다. 재무상태표의 자산에서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 또는 자본이 주주의 몫인 주주가치입니다.
밸류업, 순자산을 늘리는 행위
시장가치는 쉽게 관찰되고 다른 기업과 비교도 용이하며 주주의 부를 측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가치의 척도이지만, 기업의 입장에선 관리할 수 있는 지표가 아닙니다. 증시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 주가를 기업이 항상 직접적으로 수급의 주체로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업이 관리할 수 있는 주주가치는 기업의 재무적 실질을 나타내는 장부가치입니다. 따라서 밸류업의 대상이 되는 주주가치는 장부가치이고 기업의 재무상태표에 표시되는 순자산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밸류업은 순자산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정의하면 밸류업은 매우 단순한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순자산을 얼마나 빠른 속도로, 그리고 어떻게 증가시켜야 하느냐의 각론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경우를 고려해야 합니다.

밸류업을 순자산의 증가로 정의하고 보면 가장 중요하게 관찰해야 할 요소는 순자산이 증가하는 속도입니다. 기업이 영업활동으로 발생한 수익에서 비용과 세금을 모두 차감한 순이익이 주주의 몫입니다. 재무상태표에 표시되는 전기의 자본으로 동기의 순이익을 창출했으니 이 지표 간의 비율이 자기자본이익률(ROE)로 산출한 주주수익률입니다.

그렇다면 ROE는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적정할까요? 수익률이므로 상한선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겠지만 기업의 재무적 실질을 고려했을 때 달성해야 하는 최소한의 수준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자본비용'이라는 개념이 개입됩니다. 부채와 자본 계정은 기업이 필요한 자본을 어떻게 조달했느냐를 나타냅니다. 그리고 기업에 제공한 자금에 대해서는 필연적으로 비용이 발생합니다. 공짜는 없으니까요.

부채의 경우 대출 또는 채권의 이자율이라는 지표를 통해 그 비용을 쉽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채의 비용은 일반적으로 기업의 신용등급에 따라서 변동하게 됩니다. 자본은 어떨까요? 자본도 비용이 있을까요? 주주는 기업이 청산하게 될 경우 재산에서 채무를 변제하고 남은 잔여재산에 대한 청구권을 가지게 됩니다. 채권자 대비 훨씬 더 높은 위험을 안고 있죠. 그러므로 주주는 채권자 대비 더 높은 위험에 대한 프리미엄을 더해 더 높은 수익률을 요구합니다. 주주의 입장에선 요구수익률이고 기업의 입장에선 자본에 대한 비용입니다.

자본비용을 산출하는 자본자산가격결정모형(Capital Asset Pricing Model)과 같은 이론적 방법론도 존재하지만 실무적인 방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채권 금리의 두배를 적용하는 것입니다. 가령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차입하는데 5%의 이자를 지급해야 하는 기업이라면 주주의 요구수익률은 5%의 두배인 10%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ROE를 적어도 자본비용보다 높게 유지하는 것, 다시 말해 장부가치로 실현된 주주수익률이 요구수익률보다 높았는지 여부가 밸류업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순이익 늘리거나 주주환원 확대해 적정 ROE 유지해야
밸류업의 첫걸음을 자본비용 대비 높은 ROE로 정의하고 나면 그다음은 어떻게 적정 ROE를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방법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ROE를 높이는 첫 번째 방법은 본원적 경쟁력을 강화해 순이익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순이익이 늘어나면 ROE는 증가하게 됩니다. 이익증가율이 충분히 높아 ROE가 주주의 요구수익률을 크게 웃돈다면 그 자체로 밸류업의 조건은 자연스럽게 충족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을 이익률이 높은 기존 사업에 재투자하는 것이 주주가치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요.

문제는 기업의 이익률이 낮아져서 ROE가 주주 요구수익률을 밑도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ROE를 높이려면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주주환원을 강화해 기업 내부유보를 줄이면 됩니다. 순이익 중에서 주주환원을 한 나머지가 기업 내부에 자본으로 유보되므로 분자 대비 분모의 증가를 낮춰 ROE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밸류업은 기업의 장부가치를 고려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투자방식이 되기 위해선 가격, 즉 주가와 연결고리가 필요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가 바로 주가순자산비율(PBR)입니다. PBR은 기업의 장부가치와 시장가치를 비교한 지표입니다. 기업의 장부가치가 시장가치와 연관되어 있다는 가치투자의 관점이 투영된 지표입니다.

그런데 월가의 전설적인 가치투자자 벤자민 그레이엄과 필립 피셔는 PBR을 다르게 바라봤습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장부가치 대비 시장가치가 저평가되어 있는 기업, 즉 PBR이 1보다 작은 기업을 선호했습니다. 저평가된 만큼 안전마진이 확보된 상황에서 ROE가 꾸준하게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수준에서 장부가치가 증가하면 시장가치는 결국 장부가치에 수렴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면 초기에 확보한 안전마진의 폭과 향후 ROE만큼 증가하는 장부가치의 폭을 합쳐서 미래의 기대수익률로 봤습니다.

반면 필립 피셔의 경우에는 PBR이 1보다 낮은 저평가 여부보다는 향후 성장성에 방점을 뒀습니다. 저평가되어 있지 않아도 높은 성장성이 유지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증시를 이끌어 온 기술주들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두 투자자 모두 기업가치의 증가를 중요 요인으로 판단했지만 벤자민 그레이엄은 안전마진을 확보할 수 있는 싼 가격을 중요시한 수비형 투자자이지만 필립 피셔는 높은 성장성을 중요하게 여긴 공격형 투자자였습니다.
벤자민 그레이엄은 수비형, 필립 피셔는 공격형 투자자
그러면 코리아 밸류업 지수는 어떤 가치투자 유형에 해당할까요? 밸류업 지수의 종목선정 기준은 우리나라 증시에 상장된 시가총액 400위 이내 기업 중에서 최근 2년 적자를 기록하지 않고, 최근 2년간 연속 배당을 실시하거나 자사주 소각을 실시하고, 산업 내에서 주가순자산비율이 상위 50% 이내에 속하는 기업 중에서 ROE가 우수한 기업 100개를 대상으로 합니다. 만약 벤자민 그레이엄과 필립 피셔가 밸류업 지수를 봤다면 어떻게 평가했을까요?

벤자민 그레이엄 입장에서는 PBR 상위 기업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안전마진이 확보되지 않은 점을 아쉬워했을 것 같습니다. PBR이 높다는 것은 가격이 이미 가치를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니까요. 반면 필립 피셔의 관점에서는 위의 조건이 성장성이 충분히 높은 기업을 반영하는 기준인가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 실망하긴 이릅니다. 밸류업 프로젝트의 가장 큰 의의는 기업이 부채에 대한 이자를 지불해야 하듯 주주의 요구수익률에 부합하는 주주가치 제고하는 것이 기업의 책임이라는 인식을 시장참여자들에게 심어주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일부 우수기업만이라도 밸류업에 진정성을 가지고 동참하고 또 주주가 자기 권리를 인식하고 요구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다면 밸류업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할지도 모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송태헌 신한자산운용 상품전략센터 수석부장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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